공연이 열린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는 3년전 Loudpark 페스티벌에서 Heaven & Hell을 보았던 곳이기도 해서 나름 다시 찾는 감회가 있었다. 중대형급 규모의 밴드들이 아직도 체조경기장 같은, 아레나라고 해주기도 좀 뭐한 낡은 공연장에서만 공연하고 있는 국내 사정을 생각해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잘지어진 공연장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낡은 아레나를 많이 가봤지만, 걔네들은 그거 하나가 아니잖아.
이날 공연은 첫날 공연의 매진 이후 추가된, 일본식 표현으로 '엑스트라 쇼'였는데, 좌석이 100% 가득차지는 않았지만 2만석 이상의 좌석 대부분이 들어차서 충분한 열기를 보여주었다. 그중 절반이상이 AC/DC 머천다이즈의 히트상품인 'Devil Horns'를 머리에 끼고 붉은 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물론 나도 당연히 구입. 이걸끼고 공연 보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공연은 오프닝 없이 17시를 조금 넘겨 시작되었다. 금요일 경우 19시에 시작했고, 이것도 서양 기준으로는 매우 일찍이라 이채롭게 생각하는데, 일요일은 더욱 앞당겨져있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 수많은 무대 장비를 다음 공연지인 오사카로 지체없이 수송하기 위해 그렇게 잡은것 같다. 스테이지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첫곡인 Black Ice 앨범의 'Rock 'n' Roll Train'의 테마에 맞게 메인 스크린이 폭발효과와 함께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무대 중앙에 진짜 AC/DC 기차가 튀어나오는 스펙타클한 오프닝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는 부채꼴로 별쳐진 조명 시스템아래에 메인 스크린을 두고, 객석으로 쭉뻗어나오는 캣워크 까지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브라이언 존슨이 무려 400만 달러를 들였다고 자랑했는데 과연 돈들인 티가 팍팍.
브라이언 존슨이 우리나이로 63세, 나머지 멤버들도 50줄을 훌쩍 넘었지만 공연하는 모습은 우리가 영상으로 봐온 그 모습 그대로다. 브라이언과 앵거스가 무대전면과 캣워크까지 휘젓고 다니고, 그 뒤로는 포지션을 지키다가 백보컬을 부를때만 발걸음 맞춰서 마이크 앞으로 나오는 말콤과 클리프, 그리고 8비트 그루브의 신 필 러드가 있다.
종전 18곡에서 19곡으로 늘어난 이날의 셋리스트에선 특히 내가 너무 좋아하는 Shot Down in Flames 가 고정 레퍼토리로 들어온점, 그리고 본 스캇의 30주기를 기억하는 의미로 정말 오랜만에 셋리스트에 돌아온 High Voltage 까지 연주해줘서 내가 지금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셋리스트를 듣고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신곡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Stiff Upper Lip 투어때와 달리, 이번에는 4곡을 들려주었는데 War Machine 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내 하일라이트를 꼽자면 단연 첫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High Voltage - 앵거스의 스텝을 따라하고 "high voltage rock 'n' roll"를 외치면서 정말 행복햇다 - 그리고 Whole Lotta Rosie 를 꼽아야겠다. "42-39-56 You could say she's got it all!"을 외치며 곡이 본 궤도에 오르자 나도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 안경 안집어던진게 기특하다. 내 개인 공연 관람 역사에서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You Shook Me All Night Long 부터 이어진 최고 히트곡들은, 앨범을 들을땐 자주 스킵하게 되기도 하지만 공연에서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Let There Be Rock에서 스크린으로 AC/DC의 모든 앨범 커버들이 하나씩 지나가는 장면은 팬으로서 짠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별도로 승강장치에 올라가 이어진 앵거스의 솔로는 백미. 누가 앵거스 나이들었다고 했는지. 영상으로 꿈꾸며 봐오던 그 모습 그대로 비오듯이 땀을 쏟으며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무대를 휘젓는 모습은 공연이 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록앤롤의 스피릿.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중간 멘트도 별로 없이 타이트하게 그저 음악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러면서도 부가적인 무대장치로 즐거움을 배가시킬 줄아는 최고의 록쇼였다. 지난 1월에 G모 밴드의 내한공연을 보면서 이것들이 무슨 연주를 하러온건지 예능을 하러온건지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밴드를 하고 록이라는 이름에 뭔가 자부심을 걸고 싶다면 AC/DC가 어떻게 하는지 부터 봐야한다고 감히 단언한다.
6문의 대포와 함께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For Those About To Rock 이 끝무렵으로 다다르자 어쩔 수없이 울컥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AC/DC가 될것 같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세계최고의 밴드가 자신들의 모든것을 무대위에 쏟아붓는 장면을 목격했고 나도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에너지를 토해냈다. 내가 애초에 왜 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나를 록으로 이끌었던 것인지 그 본질을 다시 확인했다. 1%의 후회도 없는, 영원히 기억할 최고의 공연.
Rock'n'Roll Train
Hell Ain't a Bad Place to Be
Back in Black
Big Jack
Dirty Deeds
Shot Down In Flames
Thunderstruck
Black Ice
The Jack
Hells Bells
Shoot to Thrill
War Machine
High Voltage
You Shook Me All Night Long
TNT
Whole Lotta Rosie
Let There Be Rock
Highway to Hell
For Those About To Rock
P.S 공연장앞에 앵거스의 복장을 하고 몰려들고 긴 줄을 지어서 머천다이즈를 구입하는 일본팬들의 열성을 보면서 어찌나 부럽던지. 한국 록팬들중 간혹 한국사람들이 공연때 가장 잘놀고 열정적이라는 자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판좀 사주고 공연오면 돈내고 꼬박꼬박 좀 가주길. 그래야 뭐가 오던지 말던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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